주민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작지만 강한 부촌(富村) 백전1리 건설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백전1리 석기선 이장(58))은 "마을 이장을 숙명으로 알고 행복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남은 여생의 목표라며 소박한 꿈을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예천읍사무소 기점 0.5km 거리에 있는 백전1리(栢田1里)는 東北으로 백전2리, 西로 노상리, 南으로 노하, 동본1리에 접해 있다. 백전1리는 흑응산 청하루 아래 남향을 향하여 집단적으로 이루어진 마을로 잣밭고개를 중심으로 1,2리로 나뉘어진다.
대창중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출발하는 봉덕산까지의 등산로는 많은 군민들이 건강을 위해 즐겨 찾고 있다. 등산로를 따라 청하루에 올라서면 시가지가 한눈에 조망된다. 또한 아파트촌이 아니라 단독주택지역으로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백전1리(栢田1里)는 344가구(16개반)에 705명(남자 347명, 여자 358명)이 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11명(30%)으로 시내 마을임에도 초고령화로 접어들고 있으며, 90세 이상이 6명으로 최고령자는 박순분(97)씨 이다.
백전1리(栢田1里) 인구는 1972년 407가구 2,037명에서 꾸준히 증가 1977년 356가구 2,425명이 되었다가 1980년대 2,000명선, 1990년대 1,500명선으로 감소후 2000년대 1,000명선 이하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참고자료] 1977년 인구현황 356가구 2,425명(남 1,268, 여 1,157)
백전1리(栢田1里) 주민중 전업농가는 107가구(31%)로 주요 농산물은 쌀이 대부분이다. 현재 주민 구성 현황을 보면 독거노인,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비중이 높아 전반적으로 가구당 소득이 낮은 편이다.
마을 면적은 백전리 전체 면적 2,811,983.4㎡(전 247,789㎡, 답 340,100.2㎡, 과수원 39,920㎡, 목장용지 564㎡, 임야 1,592,464㎡, 대지 177,976㎡, 공장용지 0㎡, 학교용지 55,836㎡, 창고용지 5,562㎡, 도로 102,169㎡ 철도용지 0㎡, 제방 8,581㎡, 하천 127,224㎡, 구거 75,933.2㎡, 유지 12,453㎡, 수도용지 11,935㎡, 종교용지 4,675㎡ 묘지 5,772㎡, 잡종지 3,030㎡)등 이다.
백전1리 공공시설은 대한법률구조공단, 대구 경북능금농협예천지소(백전리 118-3)가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예천지소는 법률보호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보다 친절하고 신속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09년7월1일 백전리 172번지(영남의원 뒤쪽 20m)에 개소됐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3명의 직원들이 무료법률상담, 민·가사 소송대리, 형사변호 등의 법률구조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특히 농·어민, 장애인, 생활보장수급자 등 법률보호 취약지역 및 계층의 권익보호와 법률복지 증진을 위해 무료법률구조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소액사건심판법(2천만 원 이하)의 적용을 받는 민사사건과 화해·독촉 및 조정에 관한 사건 등에 대해 거점지소에 상주하는 공익법무관이 순회하면서 소송을 수행하게 된다. 무료대상자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농·어민, 장애인, 가정폭력피해여성, 국가보훈대상자 등이며 이용시간은 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이다.(문의 132번, 652-0568)
종교시설로 연방사(백전리 208, 대한불교 조계종 용문사 표교당, 주지 민승 스님)는 1913년 노하리에서 대본산 금룡사 예천 표교당으로 창건되었으나, 1930년 10월 포교승 연방 최상순(崔尙順)이 용문사의 포교당으로 이건하였다. 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요사가 있고, 법당내에는 용문사에서 옮겨온 坐高 61cm의 목조보살 좌상을 主尊으로 모시고, 좌우벽에 6축의 탱화를 모셨는데 1906년에 그린 1폭을 제외하고 모두 근년에 제작된 것이다.
백전리는 본래 예천군 북읍내면의 지역으로서, 잣나무가 자라던 잣밭(栢田)고개가 있어 백전이라 하였다. 1914년 예천면 백전동으로 편입되고 1937년 예천읍 백전동, 1952년에 잣밭고개를 경계로 백전 1,2동으로 분동되고, 1988년 洞이 里로 변경됨에 따라 백전리(栢田里)가 되었다.
[참고자료] ▲백전1리 : 흑응산-예천향교-장미주택-두영은하수빌라-영남이용실-영남의원-소백숯불갈비-SKY영수학원-동양농기계-한전삼거리. ▲백전2리 : 잣밭고개-동부초등-한전삼거리-현대캐스빌-풍원맨션-예천여고-한천교-생천교-금곡천안-능골(흑응산)
백전리는 잣나무와 대나무처럼 곧고 강직한 선비들이 많았으며, 향교가 있어 조선시대 교육의 중심지였다. 현재는 백전2리의 예천동부초등학교, 예천여자고등학교, 성락어린이집(성혜원)등이 있다.
백전1리(栢田1里) 주요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잣밭고개(栢田峴) : 백전1리에서 동부초등학교로 넘어가는 고개로, 옛날에 이 고개에서 사방 50m쯤 잣밭이 있었다고 한다. 또 이 고개는 가파르기 때문에 자주 넘어져 자파고개라고도 했다. 잣밭고개를 경계로 백전1,2리가 나눠진다.
•향교골(校洞, 행깃골, 鄕校洞) : 예천 향교가 있는 고개(백전리 179-1), 골목을 기준으로 좌측은 노상리, 우측은 백전1리에 속한다. 이 골목을 따라 北으로 올라가면 예천향교에 도달한다.
백전1리(栢田1里) 주요문화재를 살펴보면, •예천향교(醴泉鄕校) : 예천읍 백전리 199-1(대창중고등학교 옆), 문화재 자료 제138호(1985.8.5. 지정). 예천향교는 현유(賢儒 어진선비)를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1398년(조선 태조 7) 현산 서반(峴山 西畔 대심리 작은 하무실)에 창건했다.
1407년(태종 7년)에 당시 군수가 현 위치로 이건(移建)하였고, 1656년(효종 7)과 1658년(효종 9)에 각각 중수(重修)하였으며, 1770년 경에 중건(重建)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교궁(校宮)이 소실(燒失)되었고, 1967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향교의 배치는 내삼문을 중심으로 전면 낮은 곳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후면 높은 곳에 문묘(文廟) 공간인 대성전이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삼문을 들어서면 약 1m 높이의 석축 위에 명륜당이 있고, 대성전은 이보다 한 단 높여 별도의 담장 내에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으로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고,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 향교는 조선시대에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게 되었다. 현재 대성전에 5성(五聖)·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을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林즐 효자비(孝子碑) : 백전리 106, 조선 초기 林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지었다. 영주 군수였던 林즐은 1408년(태종 8)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한 후 1412년(태종 12) 왕명으로 정려되어 나라에서 1477년(성종 8)에 서본리에 건립하였는데, 金箕鷹 군수가 1802년(순조 2)에 중수하고 1856년(철종 7)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했다. 군수 柳怒가 記文을 짓고,‘孝子 通政大夫 工曹參議行朝奉大夫 知榮川郡事 林즐之閭’란 銘文이 있는데, 乙巳 潤3월 진성 이박이 썼다.
석기선 이장은 백전리 126번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6대째 살고 있는 예천 토박이다. 석 이장은 2016년 8월 마을 총회에서 이장선거에 3명이 등록했으나, 상대방이 출마를 포기 주민 만장일치 합의 추대로 이장에 선출되었다. [참고자료] 백전1리(栢田1里) 역대 이장 연혁(沿革)
재임기간 | 성 명 |
1975. 6. 1 ~ 1980. 5.31 | 최종해(崔鍾海) |
1980. 6. 1 ~ 1995. 4.29 | 장임환(張壬奐) |
1995. 5. 1 ~ 1998. 4.20 | 박근환(朴根煥) |
1998. 4.25 ~ 2006. 5. 3 | 최무부(崔武夫) |
2006. 6. 1 ~ 2016. 7.30 | 이점우(李占雨) |
2016. 8. 2 ~ 현 재 | 석기선(石基善) |
석 이장은 이장으로 선출 후 마을 발전을 위해서는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우선이라 여기고,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각종 민원 및 불편사항 해결을 위해 발로 뛰고 적극적으로 봉사 하는 등 주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석 이장은 자영업과 벼농사(0.4ha)를 경영 하면서, 주민들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고 건의사항들을 그냥 흘러듣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접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백전1리는 청년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마을 청년회(백일회)를 새로이 조직하고 경로당과 부녀회 활성화 등 마을 조직 강화에 힘쓰는 등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다.
마을 운영진 현황을 살펴보면 이장 석기선(58), 영농회장 안병수(65세), 백전1리 남자 노인회장 박찬익(76, 회원 65명), 여자 노인회장 김금자(78, 회원 80명), 새마을 지도자 최주열(54), 새마을 부녀회장 박누미(64)씨 이다.
마을회관(백전리 169-1)은 대지 168㎡, 연면적 160,4600㎡, 2층 시멘트벽돌조 1981년 준공되었다. 1층은 여자 경로당, 2층은 남자 경로당으로 이용하고 있다. 금년도 주요사업으로 백전1리(계단식옹벽 밑) 쉼터 설치(2천만 원)사업이 있다.
마을유지로 최종해(87.현 예천군노인복지회관 고문), 김성규(84.교장퇴임), 박성우(전 예천군청 사무관 퇴임), 오명진(62.대창건재사), 김세진(60, 대우종합건재:예천군번영회장)씨 등이 있다.
마을의 주요 출향인으로 •차순길(48.서울 중앙지검 부부장)...차순길 검사는 예천동부초등, 예천중, 김천고, 연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지난 99년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00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차검사는 인천지검, 부산지방검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법무부 통일법무과,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근무했다. 백전1리 차길광(73), 김재남(67)씨의 1녀 2남 중 장남이며, 고향 선후배 모임인 한우리회 고문을 맡아 활발한 교류로 우정을 다지고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가수 최석준(57)씨는 예천읍 백전1리 예천향고 근처에서 출생, 예천동부초등, 대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97년 ‘인생도’로 데뷔, 1999년 ‘꽃을 든 남자’로 일약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으며, 2005년 ‘꽃잎 사랑 / 가세요 가’2009년 ‘꽃보다 당신’ 2013년 ‘천년화 / 세월꽃 / 꽃보다 당신’등 주로 꽃을 소재로 한 노래를 부르며 예천을 널리 알리는데 공헌했다.
예천군 노래비 건립 추진위원회에서 청정지역 물 맑고 공기 좋은 예천군 대표가수 최석준씨를 위해 2014년 10월 18일 예천읍 한천체육공원에서 '꽃을 든 남자' 노래비 제막식이 열렸다.
마을의 자랑거리로 백일회는 예천읍 백전1리를 사랑하는 청장년들로 구성된 단체로 현재 회원은 24명이다. 백일회(회장 석기선)는 회칙에 어르신공경, 청소년선도, 자원봉사활동 등 사회사업을 실시하며 인정이 넘치고 살기좋은 백전1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사업은 회원들이 십시일반 납부한 자체 기금으로 실시하며, 새마을부녀회와 함께 매년 정기적으로 어르신 경로잔치, 선진지견학, 학교주변 청소년 선도활동(방범순찰), 기초수급자 무료집수리, 연말불우이웃돕기, 사랑의 김장담그기 등 소외계층 없이 다 함께 잘살아가는 따뜻한 백전1리를 만드는데 든든한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로부터 자자한 칭송을 듣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석 이장은 "백전1리가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가구가 많으며, 전반적으로 가구당 평균 소득이 낮다고 보고, 부촌(富村) 백전1리 건설을 이장 재임 기간 중 공약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마을 어르신들의 여가 선용과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공동 작업장 유치' 사업으로 현재 주민의견 접수 중에 있으며 모든 역량을 모아 어르신들이 웃음꽃을 피우며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 마을 만들기에 이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강한 집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