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 인구가 갈수록 줄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주민간 서로 화합하며 인정이 넘치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겠다"는 지내리(池內里)
김운한
이장(68)은 앞날에 대한 걱정과 불안 요소를 어떻게
해결할지 늘 고민하는 가운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예천읍사무소 기점 승용차 기준
8분(4.1km)
거리에 있는
지내리(池內里)는 구릉성 논밭과,
서정자들 일부가
속하며,
마을 앞으로 국도
28호선,
34호선이
지난다.
동쪽으로
대심2리,
서쪽으로 유천면
화지리,
남쪽으로
상동리,
북쪽으로 석정리에 접해
있다.
지내리는 전체적으로 큰산이 없고 산재부락이 아닌 들
한가운데에 집단을 이루며 마을이 형성 되었다.
예전에는 안동
金씨가 집성촌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주민의
1/3
정도이며,
평해
黃,
안동
權,
파평
尹,
김해
金,
안동
金,
전주
李,
기타 성씨 등 각성촌으로
살고 있는 농촌 취락 형태 마을로 예천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예천농공단지가 있다.
지내리(池內里)는 73가구(4개반)에 137명(남자 71명,
여자
66명)이 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47명(34%)으로 초고령화로 접어들고 있으며,
90세 이상이
2명으로 최고령자는 김대연(90세)씨 이다.
지내리
인구는
1972년 403명이었다가 이후 300명선으로 감소후 1979년 405명으로 최고점을 기록 후 1980년대 300명선,
1990년대
200명선으로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
2000년대 이후
100명선으로 줄어들었다.
[참고자료]
1979년 인구현황 68가구 405명(남 199,
여 206)최전성기 지내리는 예천농공단지,
연탄공장,
레미콘 공장 등이 있는
농업·공업이 공존하는 마을로 주민 중 전업농가는
38가구(52%)로 절반이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 특산물은 쌀이
대부분으로 기타 전작물은 자가소비 정도만 생산되고 있다.
마을 면적은 지내리 전체 면적
2,314,215.2㎡(전 397,060㎡,
답 783,107.1㎡, 과수원 2,760㎡,
목장용지
9,470㎡,
임야
466,378㎡,
대지
40,772㎡,
공장용지
134,660㎡,
창고용지
5,847㎡,
철도용지
8,600㎡,
도로
217,009.9㎡,
하천
89,392㎡,
구거
104,017.2㎡,
유지
426㎡,
종교용지
999㎡
묘지
11,955㎡,
잡종지
41,762㎡
등
이다.
지내리의 공공시설로 한국농어촌공사 경천지사
지내지소(지내리 279-15)는 1989년에 설치되었다.
주요 산업시설로
예천농공단지(8개업체),
예천연탄공장,
한국아스콘,
예천가축시장,
예천생균제참우영농조합법인,
예천폐자원,
대신펌프카,
대한펌프카,
대신중기,
대신축산,
덕원식품,
예천한일지하수,
LS농업기계,
국제종합기계,
구보다
농기계,
지내정미소,
예천포크,
㈜GS냉동건설,
무한골프연습장 등이
있다.
예천가축시장은 지난 97년 2월 예천축협이 예천연탄공장입구(지내리 376-1)에 총 사업비 4억여 원을 들여 300여두의 소를 유치하여 매매할 수 있는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개장했다.
현재 매월
4,12,22일에 경매시장이 열리고,
용궁우시장이 폐장 후
이곳으로 이전하여 매월 9,14,19,24,29일에 일반시장이 열리면서 200~350두 정도 거래 되고 있다.
예천도축장은 지내리 107번지에 소와 돼지 등을 잡는 예천
1급 도축장이었다.
예천군에서 직접 운영하여
거둬들이는 도축세는 예천군 제정수입에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정부의 도축장시설 현대화
계획에 따라 도축물량이 적은 영세한 대다수의 도축장은 폐쇄되고,
민간업자가 시설을
현대화하여 자율경쟁체제로 운영하게 되어 공개입찰을 통해 2003년2월21일 ㈜예천축산에 7억6천5백만 원에 매각했다.
예천도축장은 1천8백여평의 부지에 7백40여평 규모로 관리사,
작업장,
폐수처리장 등
3개동으로 운영되어 오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14년1월9일 60년 전통의 예천축산은 페업
되었다.
예천농공단지는 지내리 311번지 일원에 1989년 6월~1990년 7월까지 조성 되었다.
지정면적
121,575㎡,
조성면적
128,945㎡,
입주면적
98,796㎡,
총 8개업체에 종업원은 201명이다
◦ 입주업체 현황
업 체
명 |
대표자 |
전
화
(팩스) |
가동
현황 |
주생산품 |
종업원수 |
계 |
8개업체 |
|
|
|
201 |
㈜중앙기업 |
현미선 |
652-4330
(652-4332) |
가동 |
콘크리트 |
18 |
㈜
디에스리퀴드 |
윤수현 |
654-5125
(654-5127) |
가동 |
기초유기화학물질
|
8 |
우일음료(주) |
이민재 |
654-0882
(654-0884) |
가동 |
기타
비알콜음료 |
100 |
㈜대성스틸 |
남용섭 |
652-6969
(655-4121) |
가동 |
금속선
가공 |
6 |
㈜한천산업 |
남용섭 |
653-9592
(652-8011) |
가동 |
플라스틱 |
5 |
㈜
현대코마산업 |
임재원 |
654-7874
(653-9593) |
가동 |
기타
비금속광물 |
17 |
한국종합식품
(주) |
이상업 |
653-3355
(654-7843) |
가동 |
채소
절임식품 |
6 |
㈜뚜또 |
남상주 |
654-0013
(653-8100) |
가동 |
기타
채소 가공 및 저장처리 |
41 |
종교시설로 여호와의증인 예천왕국회관은 지내리
92번지에 연면적 213,6500㎡
목구조 단층규모로
2013년 6월 건립 되었다.
지내리는 본래 예천군 서읍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개포면의 상리 일부를 병합하여 지내동이라 하여 예천면에 편입되었다.
1937년 예천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8년 洞이 里로 변경됨에 따라 지내리(池內里)가 되었다.
지내리는 1560년경 덕실산,
청미산,
연화봉을 뚝으로 연결하여
현 동네 전체가 못이었으며 배를 타고 건널 정도로 큰 못이었다.
1730년경 여름에 큰
홍수로 못둑이 붕괴되어 평지가 됨에 따라 차차 농경지로 변모하였다.
그 후 예천읍 상동리에
살던 안동 김이성(金履成)이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고,
못안에 생긴 마을이라 하여
못안(池內)
마을이라
칭하였다.
지내리(池內里)
주요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
경북선 철도를 기준으로
안은 청등들,
밖은 갯들로 부르고
있다.
•
치실골
:
모산골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현재 농공단지가 해당된다.
•
독싯골
:
치실골 옆에 있는 골짜기로
덕원식품에서 석정리로 가는 들이다.
•
딧골
:
치실골 뒤에 있는 골짜기로
현재 농공단지 옆 가축시장 뒤가 해당된다.
•
모산골(池內池)
: 모산골 앞에 있는 큰
못이었으며 지내리 마을 전체를 가리키고 있다.
•
목건너
:
독싯골 옆에 있는 골짜기로
무한골프연습장 근처이다.
•
못안고개(모단고개)
: 못안 남동쪽에 있는
고개로 무한골프연습장과 예천폐자원 근처가 해당된다.
지내리 지명은 여러 곳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산골(池內池),
독싯골,
치실골 정도만
불리고,
자연부락이 아닌 집단마을
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내리(池內里)의 자연 문화유산을 살펴보면,
황새바우,
황소바우,
알바위는
연화봉(121m)의 동북방향에 있는 바위로 밑에서 보면 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것 같다하여 황새바우 또는 알바위로 부르고 있다.
옛날 이 곳에 황새들이
많이 날아들었다고 하며,
어느 장수가 바위를 들어서
이 산에 옮겨 놓았다고도 한다.
알 바위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이곳에서
정성껏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황새바우 밑에는 가파른
암벽이 있었는데 토석 채취를 하여 암반의 형태가 변했지만,
아직도 주변에 바위가 많이
산재되어 있다.
현재 알바위 주변은
잡목으로 둘러쌓여 잘 보이지 않는데 주변정리와 함께 등산로를 개설하면 소중한 자연문화유산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김운한 이장은 지내리 283-7번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예천
토박이다.
김 이장은
2012년 7월 마을 총회에서 주민 만장일치 합의 추대로
이장에 선출되었으며 성실한 자세로 각종 민원 및 불편사항 해결을 위해 발로 뛰며 적극적으로 봉사 하는 등 주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김 이장은
벼농사(4.7ha),
전작(2ha),
축산(한우 30두)을 경영하고 있다.
[참고자료]
지내리(池內里)
역대 이장
연혁(沿革)
재임기간 |
성 명 |
1958.
3. 1 ~ 1973. 3. 4 |
김유진(金裕鎭) |
1973.
3.11. ~ 1983. 3.13 |
김기한(金己漢) |
1983.
3.14. ~ 1985. 3.12 |
김철진(金澈鎭) |
1985.
3.13. ~ 1998. 3. 3 |
김무진(金武鎭) |
1998.
3.10. ~ 1999. 6.11 |
김원규(金元圭) |
1999.
6.22. ~ 2012. 7.13 |
김무진(金武鎭) |
2012.
7.16. ~ 현
재 |
김운한(金雲漢) |
2016년 군정발전(군수)유공 표창을 수상한 김 이장은 재임기간 중
대신축산-덕원식품간 마을 진입로(300M)
확포장,
구보다 농기계 옆
배수로(500M)
정비,
모산골
농로(500M)
포장,
마을 안길 전체 아스콘
재포장 등 주민들의 생활 편의를 위해 많은 사업을 추진하며 활기찬 지내리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마을 운영진 현황을 살펴보면
이장 김운한(68.영농회장 겸직),
노인회장
김정웅(78.회원 35명),
새마을 지도자
김원기(70),
새마을 부녀회장
장명순(62)등이다.
마을회관은 지내리
207-13번지에 대지 467㎡,
연면적
114,4400㎡,
단층 시멘트벽돌조로
2001년에 준공했다.
회관에는 팔각정 쉼터(同友亭),
노인회관 준공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준공기념비 앞면에는 본
회관 건립에 협찬하신 분들의 이름을 이 돌에 새겨 영원히 기념 합니다.
2001년
9월 14일 준공,
뒷면에는 협찬주민 이름과
금액이 음각되어 있다. 마을 광역상수도는 2007년도에 연결됐다.
자랑스런 출향인으로 김상동(59.전
예천군 부군수)
경북체육회 사무처장은
지내리 출신으로 예천초등(60회),
예천중(24회),
대창고(23회),
영남대학교
지역사회개발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행정대학원(석사),
영남대학교
대학원(박사)을 졸업했다.
지난 1985년 7급 공채로 공직에 발을 디딘
후,
예천군청
건설과,
민방위과에 근무하다
1991년부터 경북도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1년 사무관 승진 후
경북도 예산총괄계장~2010년 서기관 승진~도청이전추진본부 총괄지원과장,
건설도시방재국
도시계획과장,
예산담당관,
예천군
부군수,
신도시본부장(3급)
등을
역임했다.
상훈으로
근정포장,
국무총리
표창,
금오대상,
내무부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김봉진 전)중소기업진흥공단 원장은
예천초등(65년),
대창중(68년),
예천농고(71년),
중앙대
경제학과(78년)
졸업 후 중소기업진흥공단
공채 1기(79년)로 입사하여 인천지역본부장,
서울지역본부장,
진해 연수원
원장,
대구경북지역 본부장을
역임했다.
김경환 전)교수는 춘천대,
성균관대 졸업 후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김의진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졸업,
이학박사로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국민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김우환
전)교육장은 경산시교육청 교육장을
역임했다.
마을유지로 교육자 출신인
황상기(83.봉화서벽초등학교 교장 역임)씨와 안동김씨 문중 대표인
김옥현(83)씨는 각종 행사 등 마을을 이끌어 나가는데 많은
조언과 협조를 하고 있어 주민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지내리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47명(34%)인 초고령화 마을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60세가 넘었으며 독거세대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마을의 특성상
농번기(農繁期)를 제외한 겨울철에는 매일
점심,
저녁을 마을회관에서 주민
전체가 모여 공동식사를 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른은 도시락을 배달하는 등
이웃간에 가족처럼 화목하게 지내고 있어 다툼이 전혀 없는,
살기 좋고 정이 넘치는
마을로 주민들은 이를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다.
또한,
생일,
칠순 등 큰일이 있으면
마을주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자제들이 경비를 지원하는 등 회관은 늘 잔치집 같은 분위기로 활기가 넘치고 있다.
공동식사경비는
출향인,
마을어르신,
부녀회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것으로 장명순 부녀회장과 황이순씨는 매일 음식 준비를 위해 장을 보고 설거지 등 뒷정리까지 솔선수범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로부터 자자한 칭송을
듣고 있다.
현재 지내리 부녀회는 연령층이 높아 각종 행사시
음식준비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모든 회원들이 불평하나 없이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앞장을 서고 있는데,
앞으로 젊은 층이 들어오지
않으면 행사를 어떻게 치러낼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김 이장은 마을 영농회장을 거쳐 주민 만장일치
합의 추대로 이장에 선출될 정도로 신망이 두텁고,
매사에 조용하면서도
성실하게 마을일을 처리하고 있다.
말수가 적고 과묵한 성격인
김 이장은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변해가는 마을을 다시 일으키고자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으나 마땅한 대책이 없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주민들의 경우 벼농사 외 특별한 소득 작목이 없어
가구당 소득이 낮은 편으로 앞으로 농가소득 증대를 위한 특수작목 개발에 치중하겠다고 말했다.
지내리
못안(池內)
사람들은 못안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했다.
못안에서 살던 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못안에서 출생한 사람은 물론 이사온 사람까지도 이 마을을 떠나면 출세하지 못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러나 이는 못안이 워낙 작은 마을이라 주민들이
떠나면 마을을 유지(維持)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에 못안 사람들의 애향심을
기르도록 하기 위해 나온 말이었다.
그만큼 지내리의 경우
인구감소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음에도 최전성기 400명선에서 100명선으로 감소한 지금 앞으로 마을을
유지(維持)하자면 인구증가는 그 어느 것에 앞선다고 할 수
있겠다.
자기가 태어난 마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하는 김 이장은 "지내리가 다른 마을보다 더 화합하고 정이 많으며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이사 오고 싶고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