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소식

[우리마을 이장님] '밝고 힘찬 마을 만들겠습니다' 청복1리 전순섭 이장!

청솔댁 2017. 3. 3. 15:41



"흩어 진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예천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으뜸마을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타동네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예천에서 가장 크고 잘 지은 마을회관을 갖고 있는 청복1(淸福1) 전순섭 이장(50)의 일성이다.

 

 

예천읍사무소 기점 승용차 기준 5(2.0km) 거리에 있는 청복1는 동쪽으로 고평2, 북쪽으로 남본2, 동본2, 서쪽으로 왕신2리에 접해 있다. 마을 앞을 지나던 국도 34호선이 경북도립대학교 뒤편 우회국도로 신설되고, 4차선 지방도 양궁로와 신도청 직선도로(교차로), 국도 28호선, 경북선 철도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추어 접근성이 뛰어나 신도청 이후 주목을 받는 지역이다.

 

 

청복1(淸福1)는 전체적으로 구릉선 산들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너른 평야는 없고 골짜기를 끼며 농지와 산재부락이 형성되어 범위가 넓다. 예전에는 경주 , 밀양 , 파평 , 김해 , 정선 , 순흥 , 기타 성씨로 구성되었으나 현재는 각성촌이다. 청복1는 갓()의 특산지이며 농악(農樂)이 유명하다.

 

 

과거 예천군농악경연대회 우승을 여러 번 했으며, 1979년 안동 KBS 주최 경북 북부지구 농악경연대회에서 2, 1980년 영주시 승격 기념 농악대회에서 4위를 차지할 정도로 명성이 높다. 또한 예천청단놀음보존회(회장 안현진)1981, 1987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전국에 명성을 떨쳤고, 매년 청단놀음 보존을 위한 정기 공연을 펼치고 있다.

 

 

청복1384가구(19개반)835(남자 408, 여자 427)이 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63(19%)으로 노년층 인구가 적고, 아파트, 원룸 등 신축에 따른 젊은층 인구가 많은 상대적으로 '젊은 마을'로 변하고 있다. 90세 이상이 7명이며 최고령자는 우신출(105, 원고개길 49)씨로 현재 경도요양병원에 거주하고 있다.

 

 

청복1 인구는 1972986명으로 최고점을 기록 후 1980년대까지 900명 선을 꾸준히 유지하다 1980년 하반부터 700명 선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1990년대 들어 600명 선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후 1997년 세아아파트(256세대)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증가세로 돌아서기 시작해 2010년 예청빌라를 비롯한 원룸, 단독주택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현재 800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청복1리의 경우 도시계획지역 택지개발을 비롯하여 신도청 접근성 등의 요인으로 향후 인구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 된다. 마을 주민 중 전업농가는 96가구(25%)로 비농업인의 구성이 더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 대부분으로, 기타 콩(8ha)이 재배되고 있다. [참고자료] 1972년 인구현황 466가구 2,557(1,256, 1,301) 최전성기

 

 

마을 면적은 청복리 전체 면적 5,172,004.8(1,296,084, 729,513.3, 과수원 40,852, 목장용지 53,051, 임야 1,818,711, 대지 196,463, 공장용지 22,132, 학교용지 103,707, 주차장 1,645, 주유소 2,703, 창고용지 4,218, 도로 533,180, 철도용지 49,720, 제방 814, 하천 15,030, 구거 153,158.5, 유지 1,738, 체육용지73,574, 묘지 30,733, 잡종지 44,978이다.

 

 

청복리(淸福里)는 본래 예천군 남읍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리촌, 용정, 원고개, 남읍내를 병합하여 청복동이라 하여 예천면에 편입되었다. 1937년 예천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52년 행정 운영 설치로 청복 1,2동으로 분동 후, 1988로 변경됨에 따라 청복리(淸福里)가 되었다.

 

 

청복1,2리 경계는 백만장자에서부터 E1-LPG 충전소, 한국폐차장, 경북도립대학교, 쓰레기 매립장, 경도요양병원에서 원골로 넘어가는 고개까지가 1리 구역이다. [참고자료] 자연 부락명 : 청복1 도리태, 골마, 구남골, 새동네, 실금, 청복2남읍내, 다래끝(용정), 산모티, 새마, 원고개 청복1(淸福1) 주요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도리터, 도리촌(桃李村), 돌터, 도리태, 돌태 마을 : 청복1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이다.

 

 

마을길 중심으로 동서로 큰마을과 작은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1417(태종7) 강릉부사 윤희문(尹希文)이 벼슬을 떠나 이곳에 와서 마을을 개척하고 도리화(桃李花)가 만발한 곳에 터를 잡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도리촌(桃李村)이라 하였다. 이후 1860년경에 청복정(淸福亭)으로 개칭했다. 청복1리 마을 회관이 있는 마을로 현재 7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골마, 골마을, 고래, 구레, 구러 마을 : 도리태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아담한 풍치를 더해 주고, 앞으로는 경북선 철도와 4차선 도로(양궁로)가 지나간다. 산수정가든, 비원장모텔이 있는 마을로 현재 12가구가 살고 있다.

 

 

구남골(龜南谷) : 마을 주위의 산세가 거북이 모양처럼 생겼으며, 내성천을 향해 남쪽으로 기어가는 형상으로 양지 바른 곳에 터를 잡은 마을이다. 세아 아파트, 예천119안전센터 뒤에 있는 마을로 아롱다롱 어린이집에서 동본2리로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 형성되었다. 현재 26가구가 살고 있다.

 

 

새마을, 새동네 : 1979년에 청복1리 도리태 취락구조 개선을 위해 산정이라 불리우는 앞산의 1/2을 다듬어서 집을 지어 공무원, 상인 등 20가구가 들어와 살면서 새마을을 이루었다. 세아아파트 앞마을로 경북도립대학길(4차선)과 경북선 철도가 지나가고 도시계획도로가 바둑판처럼 개설되었다

 

 

최근에는 남본리 경계지점에 예천 이테크 코아루 아파트(4개동 272가구)20183월 입주 예정으로 건축 중이다. 새동네는 마을 발전의 장해가 되었던 경북선 철도가 우회 이설되고, 예전의 농경지가 택지개발지구로 개발되면서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해 앞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기대된다. 현재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실금, 실금이, 실근마 : 마을 앞의 개울에 징검다리(실금)가 있어 실금이라 하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동네 앞에 웅덩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동네 어린이가 이곳에 빠져 죽고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이 웅덩이를 메웠다. 그리고 그 옆에 샘을 하나 파 두었는데 샘물을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마을 앞을 지나던 경북선 철도가 마을 뒤로 우회 이설, 마을 앞으로 도시계획도로가 개설되었다.

 

 

마을 뒤는 삼천사(남본2)가 있다. 현재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청복1(淸福1)을 자연문화유산을 살펴보면 옻샘, 큰샘(大井) : 도리태 마을 경북선 철도 옆에 있는 큰 우물로 매화꽃이 떨어진 곳, 매화낙지(梅花落池)”에 있다고 전해져 온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의 옥황상제(玉皇上帝)가 내려와 목욕(沐浴)을 하고 하늘나라에 올라갔다고 하여 용두천(龍頭泉)’ 이라고 하였으며, 그 이후부터 이 샘물을 마시면 피부병(皮膚病)이 없어지고 옻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여 옻샘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샘 제일 밑바닥에는 사람의 몸통만한 옻나무 둥치 4개가 기초를 하고 있으며 물의 오염(汚染)을 막기 위해 은()이 박혀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곳의 우물을 먹기 위하여 전국 곳곳의 사람들이 줄을 서고 며칠을 묵으면서 몸의 병을 치료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 주민은 이 샘물을 먹기 때문에 어린이가 태어나도 옻에는 면역(免疫)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상수도 보급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매년(每年) 정월대보름날 동신제와 양력(陽曆) 815일에는 마을 주민 전체가 참여하여 샘물 청소를 하고 풋굿먹기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옻샘은 겉면에옻샘 198955일 청복1리 동민 복건(復建)”이라 표시되어 있고 철망 울타리로 둘러쳐 있다. 향후 옻샘 지붕 및 유래안내판 설치 계획 중에 있다. 옻샘 옆에는 작은샘이 있는데 주로 빨래터로 사용되었다.

 

 

송정 느티나무 : 도리태 뒷산(청복리 782-8)에 있는 느티나무로 윤희문(尹希文)이 마을을 개척하던 1417년에 나무를 심어 계속 관리하던 중 1920년경 불타버리고 다시 심어 현재까지 보존되며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이 나무는 마을의 동신목(洞神木)으로 2006622일 보호수로 지정(지정번호 06-30-01) 되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한해 동안의 소원성취를 위하여 빌고 있다.

 

 

() : 청복1리는 198650여호가 갓일에 종사할 정도로 과거 갓()의 산지로 유명했다. 여기서 만든 갓()은 경북, 충북, 강원, 경기도에까지 팔려 갔으며, 조선말 고종과 순종의 국상 때는 온 국민이 백립(白笠)을 썼다. 현재 갓()전수 기능 보유자는 죽고 없어 더 이상 종사자가 없다.

 

예천청단놀음보존회(회장 안현진) : 청단놀음은 옛부터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각종 산물이 집산하여 상업의 중심지였던 예천읍의 한량들에 의해 전승되어 오던 가면극으로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다. 주요 춤사위는 농악의 외마치·세마치·살풀이 장단에 맞추어 추는 덧뵈기춤이다.

 

 

놀이 구성은 여섯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중들의 흥을 돋우는 광대판 놀음, 양반들의 위선을 풍자하는 행의 놀음, 잡귀와 액운을 몰아내는 주지 놀음,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지연광대 놀음, 파계승을 풍자하는 얼래방아 놀음, 농작물의 촉성과 풍요를 상징하는 무동 놀음 등의 내용으로 전개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남쪽지방에 사는 한 부자가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하여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을 모아 '청단'이라는 기예집단을 꾸며서 전국을 돌며 가면 놀이를 벌인 것이 예천 청단놀음의 기원이라고 한다. 그 부자는 예천읍 동본리의 공연 중 관중들 속에서 가족을 발견하여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 이상하게도 예천에는 화재가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마을의 어른들이 회의를 거쳐 한량들을 시켜서 청단놀음을 재현하게 하니 그 후부터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예천에서는 매년 초여름 백사장에 휘장을 치고 이 청단놀음을 연례행사로 행하였고, 조선 말엽까지 재주 많은 한량들에 의하여 전승되었다.

 

 

이 놀음에 사용하는 탈은 박과 키를 이용하여 만든다. 놀이 형태로 볼 때 도시형과 농촌형의 중간형 가면극으로서 분류되는 이 놀음은 그 시작이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193510월 예천 경찰서 낙성식을 마지막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중단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김위진. 최원환. 우씨를 비롯한 지역 유지들과1981년 안동대학교 성병희 교수와 효성여자대학교 권영철 교수. 강원희 선생의 조사로 단절된 것을 46년 만에 복원하여 전승하고 있다.

 

 

청단놀음 탈의 재료는 박과 곡식을 까불어 날리는데 쓰는 키를 재료로 하여 만든다. 탈은 모두21개인데, 박으로 만든 탈이 17개이며 키로 만든 탈이4개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가면극 중에서는 키탈이 나타나는 경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예천의 청단놀음 밖에 없다. 현재 청단놀음의 탈 제작은 탈을 복원한 '장원석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김준호씨 외 2명이 이어가고 있다.

 

 

예천청단놀음은 19811022일 인천에서 제22회 전국 민속예술공연대회와 1987929일 수원.안양에서 제28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수상하고, 20021015일 충주 제43회 한국민속예술경연대회서 노력상을 받았다. 예천청단놀음은 삼강주막,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춘천판토마임 축제 등 연 10회 정도 공연을 실시하면서 전승되고 있다.

 

 

예천종합고등학교 : 청복리 947, 경북도립대학교의 전신이다. 192841일 예천공립농업보습학교 설립(2년제), 193641일 예천공립실수학교로 교명변경(1~2년제), 1945423일 예천공립농업중학교로 변경 (5년제), 194691일 예천공립초급중학교로 개칭, 1948530일 예천농업중학교로 교명 변경 (6년제), 1951820일 예천농업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1952327일 예천중학교·예천농업고등학교 1회 졸업(통합19), 1955823일 예천중학교와 교사 분리, 19891120일 예천종합고등학교로 개칭, 1998228일 예천전문대학 개교로 인해 예천종합고등학교 폐교(65회 졸업)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청복1(淸福1) 주요 공공시설로 경북도립대학교, 예천순환형매립장, 예천119안전센터, 예천농협미곡종합처리장, 예천농협장례식장, 예천군 산림조합 등이 있다. 경북도립대학교(예천읍 도립대학길 114(청복리 947-1)19961226일 설립된 공립대학교(총장 정병윤)이다. 199612월에 도립전문대학 설립인가를 받아 자동차과 40, 산업디자인과, 전자과, 정보통신과, 지방행정과 각 80명을 모집하였다.

 

 

19973월에 예천전문대학으로 개교하였으며, 초대학장으로 남규창이 취임하였다. 199812월에 교명을 경도대학으로 개칭하였으며, 경상북도에서 유일한 도립대학이 되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교육인적자원부 특성화 우수대학으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에는 학교기업인 '라오닐' 인허가를 받아 2009년에 확장개소 및 ()듀폰과 MOU를 체결하고 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전문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 학교로 선정되었다. 20089월에는 경북도립대학으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20131월에 경북도립대학에서 경북도립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경북도립대학교는 경상북도에서 설립·운영하는 도내 유일의 도립대학이다. 2017년 현재 12개 학과로 구성되어 있다. 부속기관으로는 취업지원센터, 평생교육원이며, 부설기관으로 산학협력단을 두고 있다. 학교홍보물로 경북도립대학 소식지인 GP지기를 발행하고 있다.

 

 

예천군 순환형 매립장(청복리 645)은 전국 최초로 조성된 매립장이다. 예천군은 그동안 사용해 오던 청복리 소재 '쓰레기매립장'이 매립 용량 초과로 포화 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따른 신규 매립장 건립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라 그 해결 방안으로 위생적인 순환형 매립장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 2010년도에 발주해 4년간의 공사 끝에 201412 4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예천군순환형매립장은 사업비 158억원을 들여 시설면적 19,520, 매립공간 125,000를 확보하여 향후 13년에서 30여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매립장이며 위생적, 친환경적으로 운영하여 앞으로 환경시설에 대한 주민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뿐 아니라 행정추진에도 부담을 덜게 되었다.

 

 

순환형 매립장이란 기존의 매립장에 묻힌 쓰레기를 전량 굴착, 매립 공간을 우선 확보하고, 굴착된 쓰레기 중 가연성쓰레기는 전문 소각업체에 위탁 소각 처리하며, 토사는 향후 복토재로 재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쓰레기 매립장이다.

 

 

문경소방서 예천119안전센터는 서본리 49-13에 있었는데 장소가 협소하여 늘어나는 예천지역의 소방행정 수요에 적극 대처 할 수 없어 청사 이전은 지역주민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다. 신청사는 2009년 부지확보(청복리 846)를 시작으로 사업비 18억 원을 들여 3여년의 기간을 거쳐 연면적 9972층 규모로 2012119일 준공식을 가졌다. 향후 신도시 개발과 고층 아파트 건축을 계기로 2018년 예천 소방서 신설 계획중에 있다. 조직은 이영도 센터장외 36(119 구조구급센터 16)이다.

 

 

예천농협미곡종합처리장은 청복리 691-2번지에 1993년 준공, 2000년에 증축공사로 연면적 2,073,1600, 철골조로 되어 있다. 예천농협장례식장은 청복리 441-1번지에 연면적 1,367.0700, 철근콘크리트조 3층 건물로 2007년에 건축됐으며, 빈소 22, 32, 직원은 5명이다(655-0990~1)

 

 

예천군 산림조합은 청복리 858-1, 1949년 예천군산림조합 발족(사단법인), 1953년 산림보호 임시조치법에 의한 리·동 단위 산림계 조직, 1962년 산림법 제정에 따라 계·조합 조직강화(특수법인 설립인가), 1980년 산림법에서 분리 산림조합법 독립제정(공법인), 1989년 산림조합법 개정(임명제직선제), 1993년 산림조합법 개정(산림조합임업협동조합), 19931212일 예천군 임업협동조합으로 발족, 19961030일 금융점포 개점(남본리 222-143), 200051일 예천군산림조합으로 명칭 변경 됐다.

 

 

현 예천군 산림조합은 남본리 176-1(남산공원)에서 1992년에 신청사를 준공하면서 이전 되었다. 조직도는 조합장, 상무(2), 감사(2), 이사(6), 기술지도과, 경영지도과, 금융과(남본리 위치), 직원 13명이며, 천해용(69) 현 조합장은 2005년에 직선 선출(18~20) 되었다.

 

 

주요 산업시설로 백만장자, 원두막, 선경식당, 해궁횟집, 지코바 경도휴게식당, 쌍용자동차예천써비스, 에덴산업, 아롱다롱 어린이집, 키즈어린이집, 비원장모텔, 청복주유소, 일성주유소, E1-LPG 충전소, 경도요양병원, 한국폐차장, 강변카센터, 예천택배종합물류, 대일씽크공장, LS 농업기계, 수경원, 동원종합상사, 동일종합건재, 예천종합중기, OK골프장, 삼아종합건설, 신도ENG, 경주목공소, 태창광고, 경도농약백화점 등이다.

 

 

경도요양병원(예천읍 청복리 672-1(원고개길 49)은 연면적 5,128.4100, 철근콘크리트조 지하1층 지상3층 건물이다. 200385일 의료법인 인덕의료재단 설립, 200551일 인덕의료재단 이윤환 대표이사 취임, 20061114일 병원진료개시(79병상), 200713층 증축공사, 6월 병실 증설(99186병상), 20091229일 병상변경(170138병상), 경도요양원 개원(27병상), 201511일 병상변경(138178병상), 경도요양원(26병상), 125일 신지식인으로 선정 됐다. 진료과목은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신경과, 외과, 한방과 등이다.

 

 

경도요양병원은 경북 북부 최초 재활전문병원 인증(산재인증), 보건복지부 인증의료기관으로 뇌졸중, 뇌경색, 파킨슨 질환, 척수마비, 치매 등을 양·한방 협진을 통한 전문재활치료와 요양치료를 하고 있다.

 

 

특히 인덕의료재단은 환자를 살리는 본연의 사명을 다하고자 병원 직원들과 일본의 노인요양시설을 둘러보고 존엄케어 실천으로 4() 2() 운동을 도입해 실천하고 있다. 4() 2()은 삶의 의욕을 잃은 환자에게 일상의 기쁨과 자유를 선물할 뿐 아니라 탈기저귀 운동은 병원에서 나는 냄새와 환자들의 욕창을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종교시설로 예복교회(청복리길 44-1(청복리 730-2)는 대한예수교장로회소속으로 2000218일 권상구 목사(작고)가 개척하였다. 교회재정이 열악하여 장로회 소속 영주 동산교회, 지보교회, 지보갈동교회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현재 임성희 전도사가 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신도수는 10여명이다. 철도 지하도를 건너 선경식당 옆에 있다.(653-3927)

 

 

전순섭 이장은 청복1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예천 토박이다. 전 이장은 20073월 마을 총회에서 선거로 이장에 선출되어 3년간 마을일을 맡아 보았다. 이후 6년을 쉰 후 20163월 마을 총회에서 선거로 재선출 되어 젊은 이장의 패기로 각종 민원 및 불편사항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 발로 뛰고, 성실한 자세로 마을일을 보며 주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전 이장은 예천씽크공장(653-1381, 양궁로 3)26년째 경영하고 있다. 

 

[참고자료] 청복1(淸福1) 역대 이장 연혁(沿革)

재임기간

성 명

~ 1975. 7.15

김광일(金光一)

1983. 9. 5 ~ 1985. 3.12

장병열(張炳烈)

1985. 3.13. ~ 1989. 2.28

구원모(具元模)

1989. 3. 2 ~ 2007. 3. 8

김학상(金學相)

2007. 3. 9 ~ 2010. 3.24

전순섭(全淳燮)

2010. 3.25 ~ 2016. 3. 1

김준호(金駿昊)

2016. 3. 4 ~ 현 재

전순섭(全淳燮)

 

전 이장은 예천로타리클럽,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소속 회원으로 소외계층 후원사업, 물놀이 안전교육, 각종 지역행사, 축제 시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지역사회와 마을 발전을 위해 더 봉사하는 자세로 노력하고 있다. 또 청복1(도리태) 마을 안길 확포장사업을 비롯해 예천군 순환형 매립장의 주변마을 지원 사업비로 조성된 기금으로 각종 마을의 숙원사업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마을 운영진 현황을 살펴보면 이장 전순섭(50), 영농회장 김주일(71), 청복1리 노인회장 이석용 (74, 회원 73), 세아아파트 노인회장 이종열(78, 회원 33), 새마을 지도자 장병호(48), 새마을 부녀회장 윤말순(61)이다.

 

 

청복1리 주요 출향인으로 이정삼(48, 기술서기관)은 남부초(10), 예천중(35), 대창고(34),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식물육종박사(농업생태학) 학위를 취득했으며, 기술고시 37회로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2015년 정부3.0 정책에 농림수산식품부가 1위를 차지하는데 최일선에서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근정포장을 수여받았다. 현재 농림수산식품부 농촌정책국 농촌산업과장으로 재직하며, 농촌 6차산업 진흥을 위한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청복1리 이석용(노인회장)의 자이다.

 

 

윤장진(尹長鎭 75, ()현대오토넷 대표이사)은 예천동부초등(5), 예천중(5), 59년 영남고, 65년 성균관대 상학과 졸업, 92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94년 동 산업전략과정 수료, 95년 고려대 최고국제관리과정 수료, 96년 서울대 방송정보통신정책과정 수료, 99년 국제산업디자인대학원 뉴밀레니엄과정 수료했다

 

 

68년 현대자동차 입사, 79년 현대강관 이사, 82년 현대 종합목재 전무, 90년 현대전자 부사장, 91년 현대테크시스템 대표이사 사장, 95년 현대전자에서 전자장치사업 부문의 수장인 전장사업본부장, 99()티존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2000()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청복1리 정봉주의 자이다.

 

 

마을의 자랑거리로 청복1리는 매년 정기총회, 윷놀이, 선진지견학, 봄맞이 대청소, 여름철 풀베기, 설날, 추석맞이 대청소 등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행사시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마을 운영기금이 12천만원 정도 있으며, 예천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으뜸 마을로 만들고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으며 동참하고 있다.

 

 

경로당은 두 곳으로 세아아파트 경로당은 1997년 준공, 청복1리 경로당은 청복리 793-4번지에 1998년 지어진 기존 마을회관이 노후하고 협소한 공간으로 단열 문제 등 그동안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어 오다 20151월 청복리 779-2번지에 새로 마을회관을 준공하면서 1층에 경로당이 들어섰다.

 

이번에 준공된 마을회관은 예천군 순환형 매립장의 주변마을 지원 사업비로 8억 원을 받아 주민협의회를 구성해 직접 설계 및 공사한 것으로 942의 부지에 연면적 331.7, 철근콘크리트조 2층 규모로 건립됐다. 신축된 마을 회관에는 체력단련장도 갖추고 있어 주민들의 체력 증진은 물론 다양한 문화활동 및 여가를 즐길 수 있는 휴게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는 팔각정 쉼터와 청복1리 유래비가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청복1리는 1417년 윤희문이라는 사람이 벼슬을 떠나 이곳에 와서 김씨와 마을을 개척하고 터를 잡았으며, 복숭아꽃, 오얏꽃이 만발하고 길이 굽이쳐 돌아가는 고개가 있어서 도리터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에는 용수천이라는 옻샘이 있는데, 그 샘에는 용 두 마리가 맴돌다가 하늘로 승천하였다고 전해져 왔다. 이 샘물을 마시면 피부병이 없고 속병이 없으며 옻이 오르지 않는다고 하여 이 샘을 용수천이라고 한다. 우리마을은 구남골, 실금, 골마을, 새마을, 세아아파트 그 외 산재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주민 모두가 공동체가 되고 화합하여 꿈과 새 희망이 넘치는 염원을 담은 유래비를 세우며, 더욱더 발전하고 잘사는 마을 단합된 청복1리가 될 것을 다짐합니다. 마을회관은 마을주민과 출향인이 중심이 되었고 순환형 매립장 주민협의회와 예천군의 협약 체결에 의한 지원금으로 건립하였다. 2015210(12.22) 청복1리 주민 일동

 

청복1리는 전통적인 농촌 취락형태 마을과 새로운 전입자들로 이루어진 도시적인 마을로 나눠지고 있다. 또한 전임 이장과의 주민 선거로 재선출 되는 등 마을 발전을 위해 주민 화합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앞으로 청복1리는 새로운 주거, 상업지역으로 주목을 받으며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순섭 이장은 흩어 진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예천군 순환형 매립장의 주변마을 지원 사업비로 조성된 기금으로 "'고 힘찬 청복1리 마을 만들기'를 위해 젊은 이장의 패기로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