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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장님] 꿈과 희망, 아름다운 얘기가 있는 노상리(路上里) 서성한 이장!

청솔댁 2017. 2. 3. 14:35



'과거 달동네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꿈과 희망을 키우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을 발전을 위해 남다른 각오로 동분서주하는 노상리(路上里) 서성한 이장(64)의 정유년 새해 포부이다.

 

 

예천의 진산(鎭山)인 흑응산(黑鷹山 해발 217m) 아래에 자리잡은 노상리(路上里)는 예천읍 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보는 산동네 마을로 상가는 없고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로 차가 잘 들어오지 못하는 달동네였다.

 

 

김수남 전 군수 임기중인 2008년부터 시작된 총 335천여만 원이 투입된 대심석정간 도시계획도로(1420m, 6.515m)가 개설되면서 좁은 길을 넓혔고, 민선 5기 이현준 군수는 빈집과 노후주택을 매입 공용주차장을 곳곳에 조성하여 차량진입이 가능해졌다.

 

 

또 재해위험 고지대 지역은 옹벽과 안전 철제 휀스 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주거환경개선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결과 그동안의 많은 불편이 해결되고 살고 싶은 마을로 점차 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노상리는 달동네와 고지대 재해위험 지역 이미지에서 벗어나 공기 좋고 햇볕이 잘드는 남향으로 차량진입도 가능해져 시가지 생활권 주거지역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부동산 가격이 많이 상승하고 있는 추세이다.

 

 

노상리는 동쪽으로 백전1, 서쪽으로 서본1, 남쪽으로 노하리, 북쪽으로 흑응산과 백전2(능골)에 접해 있으며, 군청과 예천교육의 요람지인 대창중고등학교, 청하루를 중심으로 봉덕산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는 건강단련코스로 많은 군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현재 264가구(8개반)에 주민수 588(293, 295)이 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61(27%)으로 90세 이상 2, 최고령자는 윤일녀씨(93)이다. 마을 주민 중 전업농가는 75가구(28%)로 회사원, 자영업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참고자료] 1977인구현황 383가구 2,027(1,021, 1,006)최전성기

 

 

노상리 인구는 19772,027명으로 최고점을 기록 후 2천명대를 유지하다 1980년대 1천명대로 감소하기 시작해 1990년대부터 1천명 이하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주민등록상 인구 600여명으로 노상리는 재개발로 대형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지 않는 한 인구 1천명 돌파는 어렵다고 하겠다.

 

 

마을 면적은 노상리 전체 면적 134,292(926, 임야 47,063, 대지 54,136, 학교용지 12,848, 도로 13,012, 구거 5,561, 종교용지 680, 잡종지 66)이다.

 

 

공공시설은 예천군청, 대창 중.고등학교, 업시설로 신라숯불, 토방, 종교시설 법흥사, 용천사, 아파트 예천맨션, 루미아트아파트, 기타 원룸 등이 있다. 노상리는 상가는 없고 대부분 단독주택 위주로 되어 있다.

 

 

예천군청(노상리 125-1)1930년에 건축된 군청 청사(목조 2)5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노후화되고 팽창하는 행정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1980216일 공유재산 심의위원회를 열어 청사 신축을 결의하고, 예천 출신 김석종 당시 군수가 지하 1, 지상 3, 연건평 764평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같은 해 1224일에 완공하고 다음해(1981) 55일 준공식 됐다.

 

 

준공식에는 예천군민을 비롯한 인근 시.군 축하객이 운집했으며, 1979년 전국민속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통명농요 특별시연이 열렸다. 또한 준공식에 앞서 1981323일 민정시찰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 내외기 군청을 방문해 주민 3백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군정 현황을 청취 후 18천만 원을 전달했다.

 

 

현재의 예천군청은 35년이 지나 행정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데다 시가지 중심에 있어 주차난 등 민원인 불편과 신도청 시대를 맞아 인구 10만명 시대를 대비하여 대심리 353(, 담배원료공장) 일원에 사업비 49,500백만 원을 투입하여 

 

 

대지면적 41,386(12,519)에 본청사 3,889.64(연면적 4,774, 지하1, 지상5), 군의회 962.87(498평 지상3), 어린이집 215(65평 지상1), 국민체육진흥센터 6,000(1,815) 규모로 2018년 상반기 이전 예정 건립공사(2014.09~2017.12)중이다.

 

 

대창중고등학교(노상리 1)1922215일에 예천청년회 주최 예천유도회 후원 아래 사설 대창학원 설립, 예천향교의 건물을 빌려 벽천 김석희 선생 원장 취임으로 개교했다. 19472월 대창공민학교로 교명 변경, 194711월 대창공민중학교로 승격, 194876 大昌中學院으로 교명 변경, 19506월 대창중학교로 교명 변경,

 

 

195010월 제2대 교장 김교용 취임, 19534월 대창고등학교 개교, 20172월 중학교 67, 고등학교 62회 졸업, 학급은 중학교 6학급에 학생수 156, 고등학교 15학급에 학생수 360명이다. 현교장은 200491일 부임한 현우택 교장(7, 6)이다.

 

 

노상리는 본래 예천군 북읍내면의 지역으로서, 큰 길 위가 되므로 길우, 노상, 관혁을 만들기도 하고, 또 군인들이 과녁을 세우고 활쏘기 훈련을 하던 곳이어서 관혁동(貫革洞)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길위는 노상동, 길아래는 노하동이라 하여 예천면에 편입되었다. 1937년 예천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8로 변경됨에 따라 노상리가 됐다.

 

 

노상리는 지리적으로 산재한 마을이 아니다 보니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자연부락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 점차 잊혀져 지금은 사라지고 없으나 전해져 오는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계당골(蓮桂堂谷)은 군청 바로 동쪽 골목 마을인데, 조선시대 연계당이 있었다. 연계당터 옆을 지나 서북쪽으로 올라간다.

 

 

새막골, 새맛골, 새마골, 사마골(司馬洞)은 연계당골 동쪽에 있는 골로서, 조선 시대에 생원과 진사가 모여 노는 사마소(司馬所)가 있었다. 향교골(鄕校谷), 행교골은 예천향교로 올라가는 골목의 마을로서 북서쪽으로 가는데, 대창 중.고등학교로 가는 주된 통로이다.

 

 

홰나무골(槐木谷), 괴목정(槐木亭), 굇대, 굇디는 노상리 안동통로에서 북쪽으로 바로 관통되는 골목의 마을로서, 경노당과 관속골의 동쪽이 되는데, 골 막바지 북쪽 적은 골목에 큰 홰나무가 있었고 굇디라는 측량푯대가 있었다.

 

 

관속골(官屬谷), 강석골, 광석골은 노상리 복판에 있는 마을로, 사마골 동쪽에 있는데, 이 골에는 군청이 노상리에 설치되고부터 관원(吏屬)들이 살았다. 지금 대창중고등학교로 가는 길목 마을이다. 골안(谷內)은 관속골을 올라가다가 경로당 뒤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는 골목의 마을이다.

 

 

깃디, 깃뒤, 귓디는 조선 말까지 군청 뒷산에 暗葬이 발견되면, 이것을 파가라는 의미로 여러색갈의 를세워 告知했다. 군청 옆 연계당골을 올라가면, 동쪽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이 길의 윗쪽에 있는 마을이다.

 

 

노상(路上), 길우는 군청 앞의 한길보다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이 일대를 길우라고 한다. 노상리의 주요문화재는 용천사(龍泉寺 대한불교조계종)1955년에 초가삼간 형태로 창건, 19888월에 중창했다.

 

 

용천사(龍泉寺)는 기도성취 및 천도도량 사찰로 천도제를 잘하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진광 주지스님은 20093월 연화사(은풍면 시항리)에서 부임했다. 시설물로 대웅전, 산신각, 용왕전, 요사채 각 1동이 있으며 신도회장은 김창배, 총무 장광현, 신도수는 100여명이다. (655-6050, 010-2928-4610 주지:진광스님)

 

 

법흥사(法興寺 대한불교천태종)1976723일 예천읍 서본리 이원숙 불자댁에서 김연이 불자외 약 20여명이 모여 안동지회 예천 독립분회를 구성하며 창건, 19768월 창립법회 개최, 19803월 본산으로부터 예천분회에서 지회로 등록,

 

 

198072일 동본1리 미륵불상 앞집으로 이전, 198186일 백전리 49-4번지내에 단층 목조건물 1동 매입, 1981923일 대한불교 천태종 예천지회 등록, 1983126일 관음존상 봉안식 거행, 1988425일 현재의 노상리 87번지에 대지 401평 매입 회관 이전,

 

 

199526일 제3대 종정 김도용 대종사님으로부터 (법법)(일흥)사찰명 하명 초대 주지 조진강스님, 199621일 총 대지 807평 매입, 1999532년간의 공사 끝에 807, 27평 건물 완공 관음존상과 상월원각대조사 진영 봉불식과 낙성식 거행,

 

 

2001~2004년 김도언스님 주지 역임, 2005~2008년 손형선스님 주지 역임, 2007년 연화 합창단 결성, 2009~2012년 이거해스님 주지 역임, 2013~2014년 손무성스님 주지 역임, 2014~2016년 정장호스님 주지 역임,

 

 

경북지역 포교중심 천태도량 법흥사(法興寺)의 중생구제 원력을 담은 미륵보전(2) 증축불사는 착공한지 2년 만인 201649일에 완공 했다. 지금의 설래장 주지스님은 201711일 보양사(봉화읍 내성리)에서 부임했다. 법흥사 신도회장은 김종하, 신도수는 250여명이다. (655-5630, 010-4799-5883 주지:설래장스님)

 

흑응산 정상에 세워진 청하루(淸河樓)는 예천군이 도청 유치를 기념하고 군민의 자긍심 고취와 지역발전의 상징으로 삼기 위해 2009115일에 건립한 도청유치기념 누각으로 11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 철근콘크리트조 3층 건물로 건평 55, 연면적 163, 데크 면적 5931,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청하루는 지역주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지역민의 자긍심 고취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물론, 야간에도 조명을 밝혀 멀리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예천교의 활조형물과 함께 예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청하루는 흑응산에서 맑고 푸른 한천 냇물을 바라보며 새로운 기운을 받고 그 기운이 신 도청으로 뻗어 나간다는 뜻과 함께 고려 성종 14(995) 영남도의 청하(淸河)라고 불려진 옛 지명의 역사성이 있으며 또한 청정한 예천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어서 도청유치기념누각의 명칭으로 가장 적합한 것으로 선정됐다.

 

흑응산성(黑鷹山城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4)은 노상리와 서본리에 걸쳐있는 예천의 진산(鎭山)인 흑응산(黑鷹山, 217m) 정상에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 이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성은 덕봉산성 또는 봉덕산성으로도 불리며 부족국가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성벽의 둘레는 1,900m, 면적은 29,544, 높이는 평균 34m이다. 주성의 성내지에 2개소의 우물과 1개소의 못이 원형대로 남아 있으나 군창이 있던 자리에는 농막이 세워져 있다. 산정상부에는 옛부터 읍민들이 산신제를 지낸 성황당이 있으며, 우물터, 지석묘, 백전리 석실고분 등이 있다.

 

흑응산성 참참참 유아숲체험원은 서본리 산1-1 일원(1)에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201612월 조성한 유아 산림교육시설로, 산림의 다양한 기능을 체험함으로써 정서를 함양하고 전인적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유아숲교육 전문가와 관계자 등의 협의를 통해 유아의 발달 과정과 감성을 고려한 다양한 시설로 조성되었다.

 

숲속 공간과 자연물을 활용하여 숲소파.인디언집짓기 등 야외체험학습장을 기획하고, 줄잡고 오르기·나무 기어오르기 등 유아들의 모험심과 체력을 증진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흑응산성 참참참 유아숲체험원" 유아숲 지도사들이 상시 배치되어 유아숲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영주국유림관리소 산림경영복지팀 630-4034)

 

의충사(毅忠祠)는 대창중.고등학교 서남쪽 언덕 위(예천읍 노상리 59-3번지, 예천군 소유)에 있던 사당으로 예천인 임지한(林支漢) 장군을 제향(祭享)했. 임지한(林支漢)은 예천읍 서본리 출신으로, 본관은 예천이다. 고려 원종(1260-1274) 때에 예천군의 관리로서, 사무를 보는 틈에도 늘 병법책을 읽었으며 항상 일찍 출근하였다. 또한 호랑이를 길들여 타고 다녔다.

 

마침 경주에서 최종(崔宗), 최적(崔積), 최사(崔思)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 정동대장군(征東大將軍)에 임명하여 난을 진압케 했다. 임지한은 청송 주왕산에 만여 명의 병력을 모아놓고 이웃 고을 수령을 죽이고 곡식을 약탈하고 서울로 처들어 가려 하는 최종(崔宗) 무리들을 싸움 한번 없이 병법으로 무사히 평정하고 개선하자, 원종 임금이 삼중대광 벽상공신으로 삼았다.

 

그러나 임지한은 벼슬을 사양하고, 상주 관내의 다인현(多仁縣)을 예천으로 옮겨 속하도록 청하니, 임금이 허락했다. 의충사(毅忠祠)는 고려 원종 때 원수임지한(元帥林支漢)과 조선 때의 창원부사 황사성(昌原府使黃士誠)을 제사 지내다가, 1715(숙종 41)에 재건하여 1868(고종 5)에 헐리고, 1898(광무 2)에 고을 사람들이 다시 세워 조선 말 의사(義士)이며 군 관리(郡官吏)였던 정대일(鄭戴一)을 추가로 제향하여 보존해 오다가, 1978년에 집중 폭우로 도괴되고 터만 남아 있다.

 

의충사(毅忠祠) 오른편에 두 그루의 감나무와 왼쪽에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 옆에 대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의충사유적지(毅忠祠遺蹟地) 표지석과 소나무 한그루만 남아 있으며,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의충사 터는 잡초만 무성하다. 지역 주민들은 예천군에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의충사를 복원하고 유래 안내판을 설치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임장군 묘(林將軍廟)는 풍양면 공덕3리 반장이재(半程峴)에 있는데, 묘비가 허물어져 1981년에 새로 세웠다.

 

서본리에서 태어나 30대 초반에 노상리로 이사와서 30여년째 살고 있는 서성환 이장은 20124월 마을 주민 합의 추대로 이장에 선출되어 성실한 자세로 각종 민원 및 불편사항 해결하며 발로 뛰며 적극적으로 봉사 하는 등 주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서 이장은 벼농사(1.3ha), 전작(0.5ha)을 경영하고 있다.

 

[참고자료] 노상리 역대 이장 연혁(沿革)

재임기간

성 명

1975. 7.10 ~ 1987. 7. 9

배종석(裵宗錫)

1987. 7.10 ~ 2007. 1.31

이해동(李海東)

2007. 1.31 ~2012. 4.17

박문환(朴文煥)

2012. 4.18 ~ 현 재

서성한(徐成漢)

 

2015년 군정발전(군수) 유공표창을 수상한 서 이장은 예천로타리클럽에 12년째 몸담으면서 지역사회 봉사 활동에도 앞장을 서고 새마을 지도자, 부녀회장, 노인회장, 반장 등 마을 운영위원들과 활발한 소통으로 주민들의 화합과 협력을 이끌어내며 정이 넘치는 살기좋은 노상리를 만들어 나가고자 늘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마을 회관은 1976년 노상리 42-1번지에 142만 원으로 건평 13평으로 건립했다. 이후 노상리 도시계획도로 개설로 철거되고 연면적 36.89, 1층 시멘트 벽돌조로 2004년 신축되었으며,  현재 노상리 사무소와 마을이발관이 있다.

 

노상리 마을 이발관은 이재원씨(79)1976년에 개업 41여년째 한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예천군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과거 대창중.고등 학생들은 모두 마을 이발관을 이용했다. 서울, 상주 등 출향인 중에는 옛날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짚어 보고자 일부러 예천까지 찾아올 정도로 노상리 마을 이발관은 추억이 살아있는 곳이다.

 

이재원씨는 "지금은 학생들 대부분이 미장원을 이용하고 연세가 많은 어르신 일부만 찾고 있어 세월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고령의 나이에다 허리가 아파 물리치료를 위해 매일 오후 가게를 잠시 비우면서도 추억이 깃들어 있는 이발관 문을 쉽게 닫을 수 없다는 그의 모습에서 노상리 마을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노상리 경로당은 노상리 38-3번지에 연면적 139.23, 철골조 스라브 구조(2)2002년 준공 됐다. 경로당 앞에는 윤태혁(尹泰赫)기념비가 있는데 이 비는 경로당 부지를 무상으로 희사한 윤씨의 뜻을 기리고자 노인회 회원들이 세웠다.

 

마을 운영진 현황은 이장 서성한(65), 영농회장 김인식(64), 노인회장 장윤환( 82, 회원 62), 새마을 지도자 정재숙(59, 원앙가스), 새마을 부녀회장 최정규씨(55)등이 수고하고 있다.

 

마을유지로 김수남 전 군수는 19430331일생(노상리 38-1)으로 경희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대창중학교 교사를 거쳐 새마을운동 예천군지회장, 예천군의회 의장을 거쳐 민선 2~4(1998.7~2010.6)3선 예천군수를 역임했다.

 

재임 12년동안 경북도청 예천.안동 유치, 전국 최초 곤충연구소를 만들어 곤충의 고장 명성을 전국에 알리면서 '2007예천곤충바이오엑스포'의 성공적 개최(1), 예천의 미래 교육발전을 위한 인재육성 예천군민장학재단 설립(104억 적립), 함께하는 살기 좋은 농촌을 위해 새마을 사업과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농촌정주권 기반확충사업과 영농기반 구축 중점 추진, 예천 상설시장 현대화사업 추진, 체육기반시설확충을 위한 진호국제양궁경기장(연면적 3,535), 예천군문화체육센터(지하1, 지상2, 연건평 3,946), 청소년수련관(지하1, 지상3)건립, 예천공설운동장 정비(2종경기장 공인)에 힘썼다.

 

문화관광 체육인프라 구축을 위한 청소년수련관, 공설테니스장조성, 한천생활체육공원과 산책로 조성, 약포전시관건립, 도시복 복원, 효공원, 충효테마공원, 삼강주막 복원, 회룡포 관광지 조성, 자연부락 단위로 330개가 넘는 경로당 설치, 1016일 군민의 날을 제정했.

 

민선자치시대 군정을 운영하면서 2002년 제2회 지방자치단체 개혁우수사례 선정(새마을 자조협동사업), 2002년 제3회 자치경영혁신 전국대회 최우수상(예천온천 직영운영), 2003년 제4회 자치경영혁신 전국대회 우수상(소나무 활용양궁경기장 조경사업) 등이다.

 

서성환 이장은 이장 재임기간 중 주요공적으로 청하루 밑에 팔각정을 설치 어르신들의 쉼터로 이용하게 했으며, 차량 진입이 어려워 연탄배달을 비롯한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을 겪고 있는 달동네 같은 노상리 고지대 주민들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고자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8억 원이 넘는 사업비로 곳곳에 공용 주차장을 설치하고 골목길을 넓혀 차량 진입과 교행이 원활하게 된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서 이장은 "노상리는 과거 빈촌들이 많았으나, 주거환경개선 사업 등을 통해 지금은 달동네 이미지에서 점차 벗어나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아울러 앞으로의 계획으로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이 많아 화재 발생시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해 주민들이 불안속에 살고 있다며, 초동진화를 위한 골목길 확장에 이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민들을 위해서라면 내일처럼 두 팔 걷어 부치고 마을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서 이장이 있기에 노상리의 앞날은 무척 밝고 희망적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