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소식

[우리마을 이장님] 주민이 행복한 마을로 만들겠습니다...고평1리 황병갑 이장!

청솔댁 2016. 12. 27. 16:43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홀로 사시는 가구가 늘어나고 있어 어르신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건강하고 행복한 마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갈수록 고령화되어 가는 농촌현실에서 마을 주민들을 보다 듬으며 함께 살아가는 행복마을로 만들겠다는 고평1(高坪1) 황병갑 이장(62)은 오늘도 마을 어르신들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순찰에 나선다.

 

 

고평1(高坪1)는 예천읍사무소 기점 승용차 기준 15(5.0km) 거리에 있으며 마을 앞을 경북선 철도가 지나간다. 내성천이 동남으로 마을을 감싸 안으며 흐르고, 서쪽으로 동본2, 북쪽으로 통명리와 보문면 신월리에 접해 있다.

 

 

고평 리는 금마교를 중심으로 흐르는 하천을 경계로 1, 2리로 나눠진다. 마을 뒤에는 낮으막한 산과 앞으로 드넓은 고평들판이 펼쳐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으로 예전부터 주민들의 천성이 유순하여 큰 다툼없이 전통적인 씨족 형태를 이루며 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성씨 분포는 경주 , 진주 , 평해 및 기타 성씨로 이루어져 있고, 1980년 이후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해 현재는 심각한 초고령화로 독거노인이 많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고평1(高坪1)46가구(5개반)86(남자 49, 여자 37)이 살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38(44%)으로 노인인구가 절반 가까이 되며, 주민 중 전업농가는 36가구(78%)로 대부분이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주요 특산물은 쌀이 대부분이고 특수 작물로 쪽파(10ha), 단무지(3ha) 재배를 하고 있다. [참고자료] 1974 인구현황 68가구 419(218, 201)최전성기.

 

 

마을 면적은 고평리 전체 면적 3,894,522.5(772,867, 1,262,852.5, 과수원 4,903, 임야 565,734)로 농경지는 고평2리에 더 많이 포함된다. 고평1(高坪1)1420년 거제 씨와 야성 씨가 처음 개척하였고 1580년 경에는 경주 , 진주 씨가 정착했는데 이 때 전자는 안골(2), 후자는 부리실(1)이라 정했다.

 

 

1600년경 좌의정 약포 정탁이 고사평(高士坪)이라 이름지어 개칭하였다. 구한말 까지는 예천군 승도면(繩刀面)의 구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동읍내면 통명동 일부를 병합하여 예천군 보문면에 속하면서 고평동이라 개칭됐으며, 1961년 행정 운영 동리 설치로 고평 1, 2동으로 분동 됐다.

 

 

19832월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평동이 예천읍으로 편입되었고 1988로 변경됨에 따라 고평리가 되었다. 고평리는 마을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으로 내성천이 흐른다. 내성천의 물길보다 높고 넓은 들을 향해 있는 마을이라 하여 고평리라 하였다.

 

 

고평1(高坪1)의 전해져오는 자연마을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부리실, 부루실, 불우실(不遇谷, 不憂谷), 부곡(富谷), 불이실(不二室)은 안골(고평2) 북쪽 골짜기에 있는 남향받이 마을로, 마을 앞에 시원한 내성천이 흐르고, 뒷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봉우리가 솟아 등잔불을 켜 놓은 형국이란데서 연유된 동명이라 한다.

 

 

3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따뜻하므로 "소구리 동네"라고도 한다. 조선 세조때 사육신 하위지(河緯地)의 후손 부사정 하정해(副司正 河呈海)가 화를 피해 들어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숨어 산다고 불우곡(不憂谷)이라 했다고 하며 임진왜란 후 여기에 정착한 청주 정탁(鄭琢)의 후손들이 근심없이 살아가는 마을이라 하여 불우곡(不憂谷)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현재는 부리실이라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현재 16가구 거주하고 있다.

 

 

사당골(祠堂谷), 서당골(書堂谷), 강당곡(講堂谷)은 고평1씨 가문의 사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사당골이라 불렀는데, 씨 집안의 강당도 있었기 때문에 강당골, 또는 서당골로 고쳐부르고 있으며 현재 마을회관 밑 철도 건널목이 있는 마을이다. 현재 6가구 거주하고 있다.

 

 

솔친재, 솔친저, 솔친정(松伐亭), 재너머, 저너머는 솔숲속에 옛날에 갖바치가 살았는데, 뒷날 경주 김씨가 솔숲을 치고 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는데, 뒷날 경주 김씨가 솔 숲을 치고 마을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다 하여 마을 이름을 솔친정, 또는 솔친재라 불렀다. 현재 마을회관이 있는 곳이다. 현재 11가구 거주하고 있다.

 

 

한질건너, 한길건너, 샘동네는 솔친재와 서당골 중간 마을이며, 옛날에 안동, 영주로 통했던 한길 건너에 있었다하여 이렇게 불리우고 있다. 현재 13가구 거주하고 있다. [참고자료] 자연부락명 : 고평1불우실, 사당골, 솔친정, 한길건너 고평2안골, 가수내

 

 

황병갑 이장은 고평1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예천 토박이다. 황 이장은 19901월에 마을 주민 합의 추대로 이장에 선출되어 12년간 이장직을 수행하다 4년을 쉰 후 20062월 주민 선거로 다시 이장에 선출된 이후 성실한 자세로 각종 민원 및 불편사항 해결을 위해 발로 뛰며 적극적으로 봉사 하는 등 주민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총 22년째 마을일을 보고 있다. 김 이장은 전문 농업인으로 벼농사(3.0ha)와 축산업(한우 18)을 경영하고 있다.

 

재임기간

성 명

1983. 2. 1 ~ 1986. 1.31

하영진(河榮鎭)

1986. 2. 1 ~ 1990. 1.14

김정수(金正洙)

1990. 1.15. ~ 2002. 1.31

황병갑(黃秉甲)

2002. 2. 1. ~ 2006. 2.27

김창수(金唱洙)

2006. 2. 28. ~ 현재

황병갑(黃秉甲)

[참고자료] 고평1리 역대 이장 연혁(沿革)

 

2000년 향군육성발전(재향군인회장), 2006년 재향군인의 날, 2010년 군정추진(군수), 2011년 도정발전(도지사), 2014년 농림축산식품 발전(장관 표창)등 수차례 수상한 황 이장은 이장 본연의 임무외에도 2015예천군 재향군인회장에 취임하여 안보의식 고취, 자연정화활동, 불우이웃돕기 등의 사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고평1리는 이장(황병갑 62), 영농회장(황병화 71), 새마을 부녀회장(강춘자 56), 고평1리 노인회장(하재문 80, 회원 46), 5개 반장 등 마을 운영위원들이 각종 행사시 서로 의논하고 협조하며 큰 불협화음 없이 마을의 모든 일들을 원만하게 잘 운영하고 있다.

 

 

예천읍이장협의회 회장을 역임(2009~2013)한 황 이장은 경로당 2층 증축(2008.6.30) 및 건강관리실 운영, 마을 진입로 확포장, 안길 포장, 독거노인들의 편안한 노후생활을 위한 공동거주의 집 운영(여자 5명 거주)등을 주요 공적으로 꼽았다.

 

 

마을의 자랑거리로 고평 1,2리 출신 공무원 모임인 고향회(회장 정형구, 회원 13)에서 매년 고평1, 2리 어르신 경로잔치를 개최하며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을 주민들은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고평1리 경로당은 새마을자력사업으로 1973년경 건축한 마을회관을 허물고 2002년 현재의 경로당을 준공했으며, 광역상수도는 2013년에 연결됐다.

 

 

황 이장은 마을의 숙원사업은 대부분 이루어졌으며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마을 주민 중 주소를 타지에 두고 있는 가구들이 많은 실정으로 예천군으로 주민등록상 주소 이전을 통한 관내 인구 증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 갈수록 늘어나는 독거노인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경로당 내 공동거주의 집을 확대 운영하여 독거노인들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한가족처럼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어르신 안부묻기, 공동식사 등 부녀회장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바쁜 농사철에는 들일로 고단한 하루를 보내지만 어르신들을 만나고 안부를 살피는 것은 이장의 당연한 직무라 여기며 황 이장은 자신도 얼마 안있으면 노인이 되기에 마을 공동체 전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인심 좋은 마을로 만들고 마을 경로당에 얼굴을 보이지 않는 어르신들이 있으면 행여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가가호호 방문도 빠뜨리지 않는다며 환하게 웃어 고향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