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소식

[우리 마을 이장님]'예천읍의 중심지 마을로 만들겠습니다'노하리 황병열 이장!

청솔댁 2016. 11. 24. 18:58
 



"30년 넘게 노하리(路下里)에서 살아온 경험을 살려 맛고을 문화의 거리 활성화와 예천읍의 행정과 문화 중심지로 거듭나도록 미력하지만 온 몸을 던져 봉사정신으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노하리 황병열(63) 이장의 당찬 포부다.

 

 

예천읍 29개 행정리 중 첫 번째인 노하리는 예천읍사무소, 국민은행, 예천축협, 병원을 비롯한 대형숙박업소, 고급식당, 유흥주점을 비롯해 예천 맛고을 문화의 거리가 있는 예천읍의 정중앙으로 행정과 문화, 상업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노하리는 349가구에 632(남자 316, 여자 316)이 살고 있으며 주민 대부분이 자영업에 종사하는 관계로 토착민 보다 들어온 사람이 더 많은 도시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145월 이장에 선출된 황병열 이장은 주민들간의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매일 마을 곳곳을 돌며 주민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노하리(路下里) 지명유래를 살펴보면 군방골(軍房洞), 궁방골(弓房洞), 관혁동(貫革洞)은 군청앞 정문에서 동쪽으로 뻗은 큰길 근처에 있는 노하리의 원마을인데, 동헌(東軒)을 지키던 군인들이 과녁(貫革)을 세우고 활쏘는 훈련을 하던 곳이고, 병사가 있었다고 하여 군방동이라 부르기도 하고, 활을 만드는 궁방이 있었다 하여 궁방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하(路下), 질우, 질알은 원래 한천(漢川)이 흐르던 곳이었으나, 고려 의종 (1147~1170)때 임춘(林椿)이 서본2리 굴모롱이에 암석 20m 가량을 뚫어 "林椿"이라 불리면서, 노하리에 작은 마을이 생겼으나, 배수가 잘 되지 않아서, 1919년에 임춘천의 확장공사를 하여 배수가 잘 되어 이 일대를 매립하여 집터가 확장되어 갔다. 군청 앞에 동서로 큰길이 트여 있어 이 길을 두고 길 위는 질우(路上) 길 아래는 질알(路下)로 부르게 되었다.

 

 

봉란(鳳卵)거리는 노하리 32번지(현 보원유황오리유통)에 봉란산이 있어서 불리어진 마을인데, 현재 파라다이스(樂園)호텔 동쪽 네거리이다. 자리전골이란 노하리와 동본리의 경계를 이루는 골목의 마을로, 1960년대 까지 자리를 파는 노점전이 열리었다. 지금은 이곳 일대(창성청과)를 중앙시장이라 부른다.

 

 

현재의 노하리는 세월이 흐르면서 지명유래의 흔적을 찾지 못할 정도로 변했다. 아울러 과거 영광의 흔적을 궂이 쫓으려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변해야 할 노하리의 미래만이 남아 있는 현세대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신도청 시대가 시작되면서 우리 예천은 격동의 큰 물결속에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보며, 예천 맛고을 문화의 거리에서 멕시칸양념통닭을 운영하고 있는 황 이장은 마을 이장의 맡은 일들을 떠나 예천읍의 중심지 발전을 위한 고뇌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년 정도 짧은 기간의 이장 활동에도 불구하고 황 이장의 공적을 꼽으라 한다면 맛고을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일 것이다. 황 이장은 맛고을 문화의 거리 추진위원장을 맡으며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속 에서도 상인들의 협조와 이해를 구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뤄내며 맛고을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어 예천의 명소가 된 것에 큰 기여를 한 것이 모범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맛고을 문화의 거리는 예천읍 중심 상가의 도심 기능을 되살리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예천군에서 2년여 동안 추진한 사업으로 예천군민들의 애환과 추억이 깃든 골목길을 전선 지중화, 보도정비, 간판정비, 경관가로등 설치, 추억의 6070 벽화, 벤치 등을 설치하며 우중충했던 도시 미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예천의 명소로 탈바꿈 됐다.

 

 

예천읍 남본2리서 태어났지만 노하리에서 잔뼈가 굶은 황 이장은 이장선거에서 당선 된 후 유명무실한 마을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고 새마을 남녀지도자, 영농회장, 청년회장, 노인회장 등 마을 운영위원들과 분기별 모임을 갖으며 마을 발전을 위해 기탄없는 의견을 나누고 있다.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전 세대를 일일이 몇 차례씩 방문하면서 주민들의 삶을 살피고 불편함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며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황 이장은 늘 온화한 인상에 미소를 머금고 주민들을 대함에 주변의 칭송이 자자하다고 하겠다.

 

 

노하리 박동기(78, 현대도료유리)씨는 "황 이장은 이장이 되고부터 마을청소를 비롯하여 활기찬 마을 만들기를 위해 노력하고 주민과 소통하며 내일처럼 주민들의 불편과 민원해결에 앞장서는 모범이장"이라며 "가장 시급한 마을 경로당이 조속히 신축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 이장은 사업장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예천로터리클럽회원 15년 봉사를 비롯해 예천읍의용소방대원, 자율방범대원, 청소년지도위원을 역임했으며, 예천노인전문요양원 이발봉사, 면단위 마을 이발봉사 등 소외된 이웃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위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시간에 쫓기고 늘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노하리의 주요인물을 꼽는다면 반형식 전 국회의원, 권혁일 전 경북도의원, 김기인 전 경북도의원, 윤여빈 전 경북도의원은 출생지는 노하리가 아니지만 이곳에서 사업장을 경영하며 가슴에 품었던 큰 뜻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이외도 김교용 대창학원 전 이사장, 황중배 전 예천읍장 등 노하리는 예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주민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예천읍 행정의 중심지인 예천읍무사무소(醴泉邑事務所)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10(노하리 70-2)로 이 건축물은 일제(日帝)1032년에 건립한 관청건물로서 창호, 내부 마감재 등이 개조되기는 하였으나 전체적인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현재 건물의 외관, 특히 정면의 구성과 벽돌을 쌓은 수법 등을 보면 당시의 시대적, 양식적 특서이 잘 표현되어 있다. 현재 경상북도 내에는 조선 말기부터 일제에 이르는 시기의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그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예천읍사무소는 근대 역사 건축물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역사에 의하면 예천군(醴泉郡)은 본디 수주현(水酒縣)인데, 757(신라 경덕왕 16)에 예천군(醴泉郡)이라 처음 불렸다가 고려 때, 보주(甫州), 양양(襄陽)이라 했으며 조선 태종 때인 1416년에 다시 예천군이 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천(醴泉)이란 지명은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 양호가 이곳을 찾아 물맛을 본 후 과연 이름그대로 예천(단술 샘)이로구나 라고 감탄했다는 얘기가 있다. 송나라시대 <장자>에서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는 신비의 물로 표현하고 있다. 중국 <예기>에서는 '태평성대에 하늘에서는 단맛의 이슬이 내리고(天降甘露) 땅에서는 단맛의 샘물이 솟는다(地出醴泉)'라고 기록하고 있다.

 

 

<택리지>에서도 '사람이 살만 한 곳은 물이 달고 토지가 비옥한 곳'이라고 했으니 맛이 단 샘물이 솟아나는 내고장 예천은 가히 최고의 고장이 아닌가 싶다. 단술이 솟아나는 샘이라고 널리 알려지며 예천(醴泉)지명의 어원이 된 샘물주천(酒泉)’은 예천읍 노하리 64-1 번지에 있다.

 

 

기록에 의하면 지금의 '주천(酒泉)'은 일제가 개발한 우물이고, 원래의 주천은 대창고등학교 아래 노상리에 있었는데 상수도(上水道)가 보급됨에 따라 폐정(廢井)하였던 것을 이 우물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愛情)과 우리 고을의 지명 유래와 얽힌 유서(由緖) 깊은 샘이기에 1990년에 목조와가(木造瓦家) 사각(四角)지붕의 보호각을 세우고 샘(酒泉)을 복원(復元)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다.

 

 

어쨌든 간 역사에 기록되어 전해져 오는 단맛의 샘물, 우리 조상들이 마시던 그 샘물을 지금 마실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겠다. 행정, 문화의 중심지인 노하리에는 먹거리가 많으며 황 이장이 추천하는 맛집을 열거해 본다.

 

 

화목숯불(한방오리전복탕), 한남식당(황태기 매운면 특허), 삼미식당(막국수), 목로곱창, 한국관(복어), 다시오리(보리밥), 시장뚝배기(콩나물해장국), 속초이모네찜, 예림식당(선지국), 덕원아구찜(해물탕), 금천숯불(소갈비살), 낙천갈비(돼지갈비 고추장), 황금분식(만두, 찐빵) 등이다.

 

 

검정고시로 초·중을 졸업하고 대구 경신정보과학고를 거쳐 경북도립대학 지방행정학과를 졸업할 정도로 남다른 학구열을 가지고 있는 황 이장은 "초심을 잃지 않고 마을주민들의 화합과 예천군정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남은 임기동안 주민들이 실망하지 않는 이장이 되겠으며, 주민 숙원사업인 노하리 경로당 건립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현재 노하리 마을 경로당 건립을 위해 십시일반 모은 1500만 원의 기금이 마련되어 있다. 주민들이 이장을 믿어주고 이장은 주민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내일처럼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노하리는 예천에서 으뜸가는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글.사진 제공/읍사무소 장광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