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수학의 노벨상’ 필즈상 받은 테렌스 타오 교수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12일 서울대에서 소수의 구조와 임의성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는 테렌스 타오 교수. 최정동 기자 | |
“수학적 난제를 풀고 싶을 때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테렌스 타오(34) 교수가 그 문제에 흥미를 갖게 하는 겁니다.”
12일 오후 1시 서울대 상산수리과학관 101호 강의실. 세계적인 수학자 테렌스 타오 UCLA 교수 강연의 사회자는 주인공을 이렇게 소개했다. 타오 교수는 중국계 호주인으로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리며 2006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200여 석의 강의실은 가득 찼다. 자리를 찾지 못한 참가자들은 계단과 통로에 걸터앉기도 했다. 강연을 듣기 위해 부산에서 온 해운대고 1학년 구도완(17)군은 “평소 수학을 좋아해 타오 교수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찾아 보곤 했는데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타오 교수는 진한 감색 모자티에 갈색 면바지의 수수한 차림으로 강연장에 등장했다. 실내가 더운 듯 모자티를 벗은 그는 책상에 놓인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강연을 시작했다. 강연 주제는 ‘소수의 구조와 임의성’이었다. 그의 주된 연구 분야인 소수(素數:1과 자기 자신만으로 나누어지는 1보다 큰 양의 정수. 2, 3, 5, 7, 11…)에 관한 전반적인 강의가 이뤄졌다. 한 시간의 강의가 끝난 후 타오 교수를 만났다.
아이큐 221, 두 살 때 덧셈·뺄셈
-아이큐 221, 두 살 때 덧셈과 뺄셈을 하고, 아홉 살 때 이미 대학생 수준의 공부를 했다고 들었다. 당신은 천재인가.
“아니다. 어떤 분야든 10년 이상 공부하다 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정상에 오른 모습만 보고 나를 천재라고 한다. 하지만 내가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보지 못했다. 나 역시 많은 실패와 좌절을 하면서 정상에 올랐다. 그런 의미에서 수학계에 똑똑한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천재를 만나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신의 연구에는 재능과 노력이 몇 대 몇의 비율로 작용하나.
“솔직히 어릴 때는 내가 가진 재능에 많이 의지했다. 대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시험 2주 전에 공부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에 가보니 그게 아니더라.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적고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재능과 노력 둘 다 필요한 것 같다.”
-왜 수학자가 되었나.
“이미 어릴 때부터 수학자였던 것 같다. 나는 기억이 잘 나진 않는데 내가 세 살 때 또래 아이들을 모아놓고 숫자 세는 법을 가르쳤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수학자가 된 것 같다. 사실 다른 분야에 대해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어릴 적 이야기를 해 달라. 책상 앞에서 수학 문제만 푸는 아이였나. 아니면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것도 좋아했나.
“평범한 아이였다. 조금 다르다면 남들보다 빨리 졸업한 것 정도. 운동은 아주 못했다. 피아노를 배우긴 했지만 지금은 전혀 못 친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수학경시대회에 나가는 것과 퇴직한 교수님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며 많은 얘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수학을 어려워한다. 당신은 수학이 재미있나.
“재밌다. 수학은 논리적이고 항상 깨끗하게 떨어지는 답이 있다. 그게 수학의 매력이다. 나는 수학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알게 됐다. 수학적 배경을 가지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이해할 수 있다. 논리적이고 명쾌한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은 일상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로또를 사면 손해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다.(웃음)”
-2006년 필즈상(수학계의 노벨상으로 4년에 한 번 수여)을 받은 연구는 어떤 연구였나.
“소수에 관한 연구로 상을 받게 됐다. 소수는 구조와 임의성을 동시에 가진 아주 매혹적인 대상이다. 소수의 법칙 연구를 통해 암호화 체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통신이나 정보보안 분야에 응용돼 사용될 수 있다.”
-수상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웃으며)다만 상을 받기 전에는 회의 때 내 자리가 가장자리였는데 상을 받고 나니 가운데로 옮겨지더라.”
-한국 수학의 수준은 어떻다고 보나.
“한국에 온 지 이틀밖에 안 돼 잘 모르겠다. 또 한국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하지만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수학자들은 많이 알고 있다. 우리 학교에도 몇 분 있다. 그분들을 보면 한국 수학 수준은 최고인 것 같다.”
“수학올림피아드, 스포츠처럼 즐겨야”
-지금 한국에서는 각종 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해 입상하려는 붐이 일고 있다. 세계수학올림피아드 입상자로서 어떻게 보는가.
“세계수학올림피아드는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왜냐면 준비 과정도 즐거웠고 덕분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수학올림피아드도 스포츠처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원에서 암기식으로 준비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목표가 있어야 한다. 무작정 하버드대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결국 입학하긴 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정작 자신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맹목적인 준비는 옳지 않다.”
-수학자인 당신의 눈에는 숫자가 어떻게 보이는가. 특별히 좋아하는 숫자가 있나.
“나한테 숫자는 또 다른 언어다. 딱 떨어지는 언어. 좋아하는 숫자 하나를 말하라고 하는 것은 좋아하는 알파벳을 말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때문에 한 가지만 말하기 힘들다. 수학자들에게 숫자는 영어나 한국어같이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언어인 것이다.”
-가족 얘기를 해 달라.
“일곱 살짜리 아들과 아내가 있다. 바빠서 가족과 많은 시간은 보내지 못하지만 최대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한 번은 집에서 아들에게 나눗셈을 가르친 적이 있다. 아내가 만든 10개의 쿠키를 보여주고 이걸 5명의 아이들한테 주려면 몇 개로 나눠야 하느냐며 물었다. 그때 아들이 다섯 살이었는데 잘 대답하더라. 아들이 수학을 좋아하긴 하는데 아직은 답이 틀렸을 때 받아들이는 법은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은 컴퓨터 게임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웃음)”
-수학 외의 관심사가 있나.
“개인적인 관심은 다양하다. 특히 언어나 역사에 관심이 많다. 고등학교 때 라틴어 수업을 들었는데 평소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의 작동 원리를 알게 돼 꽤 유익했던 수업이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앞으로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흥미’다. 어떤 분야에 흥미를 가지느냐에 따라 목표가 항상 바뀐다. 5년 전만 해도 내가 지금 이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을 줄 생각도 못했다.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항상 내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다.”
테렌스 타오(Terence Tao)
1975년 호주 출생. 현재 UCLA 수학과 교수로 2006년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 홍콩계 의사 아버지와 수학 교사 어머니 사이의 장남. 미 우주항공국(NASA)에 근무하는 한국계 미국인 부인과 일곱 살 아들이 있음. 두 살 때 ‘세서미 스트리트’란 프로그램을 보면서 혼자 덧셈, 뺄셈, 글자를 깨우침.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알려진 타오 교수는 열 살 때부터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해 금·은·동메달을 수상. 20세에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4세부터 UCLA 수학과 교수로 활동 중. 필즈상뿐 아니라 2000년 살렘상, 2002년 보처상, 2003년 클레이 연구상 등 수학 분야의 주요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