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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마지리에는 영국군 6·25참전 기념비가 있다. 단순한 기념비로 여기기 쉽겠지만 여기에는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었던 치열한 전투의 전설이 담겨 있다. 중국군 4만2천여명과 사투를 벌인 750명 영국군의 투혼이다. 말그대로 56대 1의 전설적인 전투. 나흘간을 버틴 영군군은 50명이 살아남았다. '마지막 한발'은 이 전설적인 전투를 기록한 책이다. 워싱턴 타임스 영국 특파원인 저자는 2년여 동안 살아남은 50여명을 인터뷰하여 그 전투를 생생하게 재연해 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이 포로 수용소에서 겪은 고통스러운 학대와 폭력도 생생하게 재연했다. 책에는 전쟁의 참혹함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증언들이 담겨 있다. 중국군이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 위해 남하하던 1951년 4월. 임진강 하류에서는 영국군으로 구성된 29보병여단이 방어를 하고 있었는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어서 중국군 36개 사단과 북한군 1개 군단이 투입되었다. 수적으로 불리하던 영국군은 후퇴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글로스터 대대 750명은 퇴로를 차단당한다. 그 자리에서 이들은 외로운, 그리고 고통스러운 항전을 시작한다. 전쟁 상황의 묘사는 매우 세심하고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전쟁의 시작, 글로스터 대대의 정찰대 템플 소위는 적이 야음을 틈타 도하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한다. 그리고 운명의 1951년 4월22일 밤 10시 강쪽에서 어수선한 중국어 소리가 들리고 조명탄 아래 강을 건너려는 수백명의 중국군을 발견한다. '사격'. 템플 소위의 명령에 303브랜 경기관총이 분당 500발까지 발사된다. 발사후 잠시 정적이 있고, 적들은 계속 몰려오고, 기관총은 총신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45시간이 지난후, 30여만명의 중국군 중 4만2천여명이 템플 소위가 속한 글로스터 대대를
대대원들은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책 제목처럼 마지막 한발이 없어질 때까지 싸우고 압도적인 수의 적병과 야간 백병전까지 치렀다. 책에는 전투의 치열함과 비참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죽어가는 중국군을 밟고, 눈앞의 중국군에게 미친듯이 총을 쏴야 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이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게 버틴 나흘, 50여명만 살아남아 압록강변 포로수용소로 끌려간다. 포로수용소는 전쟁터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굶주림과 질병, 폭력, 학대는 기본. 세뇌교육까지 받아야했다. 많은 병사들이 여기에서 또 죽어갔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이 멀쩡할 수는 없었다. 모두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게 되었다. 밤마다 꿈에 자신의 참호에서 끔찍하게 죽어가는 적군의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한국을 방문한다. 책은 2001년 4월의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전투 50주년을 맞아 임진강 전투지를 찾은 70대 또는 80대의 영국군 노병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지프차가 있지만 이들은 걷는다. 지프를 타는 게 좋겠다고 권유하는 저자에게 노병은 "알고 있다오. 그렇지만 이 언덕은 걸어 올라가야 할 듯 싶어서 말이오"라고 말한다. 그렇게 생존자들은 치료를 받았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도 이들의 치료에 한 몫을 했다. 그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 쓴 이유는 간명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빚어낸 이 성공에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성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기위해서는, 그 혹독했던 시절의 나락 또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임진강에서 전투를 벌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잊어진 전쟁'에 조그마한 생명의 불씨를 불어넣었기를 바란다"고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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